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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맥키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3년째 습작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여정에서 로버트 맥키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는 나의 가장 신뢰하는 스승이자 동반자였다. 맥키의 조언대로  반복해서 읽었고, 중요한 부분은 타이핑을 했는데 하다 보니 어느새 책 내용을 거의 다 옮기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오늘은 한 작가 지망생의 시선으로, 이 책이 전하는 깊은 통찰과 가치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특히 내가 실제로 습작하며 깨달은 점들을 중심으로, 같은 꿈을 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1.  스토리의 본질 _ 인간 욕망의 지도

    맥키는 스토리의 시작점에 대해 의외로 단순한 정의를 내린다. "인생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 간단한 문장이 모든 이야기의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기대와 현실의 간극'이 드라마를 만든다고 말한다. 내 초기 습작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간극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멋있어 보이는 장면들과 감동적인 대사들을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시청자들이 몰입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그때, 맥키의 이 말은 번개처럼 나를 강타했다. 모든 캐릭터는 반드시 '무언가를 원해야' 하며, 그것은 단순한 소원이 아닌 절실한 욕망이어야 한다. 이 욕망이 없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대본이라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맥키는 이것을 '프로타고니스트의 욕망'이라고 부른다. 주인공은 명확한 목표를 가져야 하며, 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욕망이 단순히 '원한다'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 캐릭터의 존재 이유가 될 만큼 강렬해야 하며, 이루지 못한다면 파멸할 것 같은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특히 맥키는 '가치 있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객은 주인공의 욕망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여정에 기꺼이 동참할 의지가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착한' 목표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때로는 반사회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욕망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욕망의 '진정성'이다. 관객이 그 캐릭터의 입장이라면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 있는 동기가 필요하다.

     

     

    2. 구조와 캐릭터_이야기의 뼈대와 살

    시나리오의 구조에 대한 맥키의 설명은 처음에는 너무 기계적으로 느껴졌다. 3막 구조, 8개의 시퀀스, 비트와 씬의 구성... 이런 요소들이 과연 창의적인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될까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단순한 공식이 아니었다. 인간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자,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스토리텔링의 문법이었다. 특히 중반부 위기(Midpoint)의 활용과 서브플롯의 효과적인 배치는 작가 지망생인 나에게 가장 큰 도전이었다. 맥키는 특히 '시퀀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나의 시퀀스는 그 자체로 작은 드라마여야 하며, 동시에 전체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각 시퀀스는 명확한 '목적'을 가져야 하며, 그 목적을 향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각 시퀀스가 단순히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캐릭터의 변화와 성장을 보여주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도 맥키는 생리적, 사회적, 심리적 세 가지 차원을 강조한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정하려 애썼다. 캐릭터 프로필을 수십 페이지씩 작성했고, 그들의 과거사부터 취미, 습관까지 세세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점차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설정 자체가 아니라, 이 세 차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캐릭터의 행동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라는 것을. 특히 심리적 차원에서의 모순과 갈등이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핵심이라는 사실이 내게는 큰 깨달음이었다.

     

     

     3.  대사와 서브텍스트 _ 말하지 않는 것의 힘

    대사 쓰기는 모든 작가 지망생들의 고민일 것이다. 나 역시 초기에는 모든 것을 대사로 설명하려 했다. 캐릭터의 감정, 상황의 설명, 심지어 과거의 사연까지. 마치 캐릭터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관객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맥키는 이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다. "좋은 대사는 말하지 않은 것에서 시작된다." 서브텍스트의 중요성을 깨달은 후, 나는 대사를 과감히 줄이기 시작했다. 때로는 한 마디의 평범한 대사가 수백 마디의 설명보다 더 강력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실제로 내 습작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캐릭터들이 자신의 진심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게 되면서, 오히려 그들의 감정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맥키는 '대사의 경제성'도 강조한다. 모든 대사는 목적이 있어야 하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말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대사를 짧게 쓰라는 의미가 아니다. 각각의 대사가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고, 플롯을 전진시키며, 동시에 숨겨진 의미층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사는 빙산의 일각일 뿐, 그 아래 숨겨진 거대한 감정의 덩어리를 관객이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맥키가 말하는 진정한 대사의 힘이었다.

    맥키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는 단순한 작법서가 아니다. 이는 이야기의 본질을 파헤치는 인문학 서적이자, 인간의 욕망과 갈등을 탐구하는 심리학 교과서이며, 동시에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조언자의 목소리다. 작가 지망생으로서 이 책을 읽고 또 읽으며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은, 결국 모든 이야기는 '인간'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환상적인 세계관과 복잡한 플롯이라 할지라도,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의 진실된 욕망과 감정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이 전하는 깊은 통찰은, 오늘도 키보드 앞에서 고민하는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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